
한빛미디어 서평단 <나는리뷰어다> 활동을 위해서 책을 협찬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TL;DR
- AI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계속 하고 있었는데, 정작 "이건 어떤 종류의 문제다"라고 부를 언어가 내겐 부족했던 것 같다.
- 이 책은 실무에서 반복되는 설계 상황을 범주와 패턴으로 정리해 두려는 시도라고 이해했다.
- 새로운 기술을 알려준다기보다, 내가 이미 어렴풋이 하고 있던 것들에 이름을 붙여준 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정답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보다는, 판단의 좌표축을 몇 개 늘려주는 책이라고 느꼈다.
회의에서, 나는 자주 말을 아꼈다.
돌아보면 나는 회의에서 의견을 잘 내지 못하는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만들고 있긴 했다. 회사에서 바라는 역량으로 2x ~ 10x를 해내기 위해, AI 엔지니어 분과 함께 여러가지를 시도해보았고, 프롬프트를 고쳐보았다. 하지만 늘 손은 늘 바빴다.
그런데 막상 "지금 우리 회사가 AI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어떤 종류의 문제인가요?" 라는 질문 앞에서는, 확실한 정답이 작성되어 있는 정답지 혹은 머릿속에 펼쳐볼 지도가 없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던 것 같다. 이 책을 집어 든 건 그 허전함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신기술을 기대했다기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부를 수 있는 언어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
책을 펴기 전, 나 스스로에게 던진 세 가지 질문
읽기 전에 기대치를 정리해 두어야 기억이 더 오래간다고 생각하여, 이번엔 3가지 질문을 먼저 작성하고 책을 읽어보았다.
- Q1. 도메인의 맥락 위에서 요구사항을 더 촘촘하게 나누고 설계하는 감각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을까?
- Q2. "그냥 좋아 보여서"가 아니라, 비용·지연·정확도 같은 수치와 트레이드오프로 설계를 저울질하는 시야를 얻을 수 있을까?
- Q3. 여기서 얻은 것을, 나 혼자만의 감이 아니라 팀에서 함께 쓸 수 있는 공용어로 옮길 수 있을까?
책이 시도한 정리 방식, 7개의 서랍, 32개의 패턴
이 책의 구성을 나는 '서랍'이라는 비유로 이해했다.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던 도구들을, 상황별로 넣어둘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느낌이었다고 생각한다.
- ① 콘텐츠 스타일 제어 — 로짓 마스킹, 문법 제약, 스타일 트랜스퍼처럼 응답의 형식을 원하는 틀 안에 두는 방법들
- ② 지식 더하기 — 기본 RAG부터 시맨틱 인덱싱, 대규모 인덱싱, 검색을 인지한 인덱싱까지, 모델에 지식을 붙이는 층위들
- ③ 모델 능력 확장 — CoT, ToT, 어댑터 튜닝처럼 추론을 펼치거나 분기시키는 접근들
- ④ 신뢰성 개선 — LLM-as-Judge, 리플렉션, 의존성 주입으로 결과를 되짚어 검증하는 루프들
- ⑤ 에이전트의 행동 — 툴 콜링, 코드 실행, 멀티에이전트 협업처럼 모델을 바깥세상과 잇는 방법들
- ⑥ 제약 조건 해결 — SLM, 프롬프트 캐싱, 추론 최적화로 비용·지연·용량을 조절하는 선택들
- ⑦ 안전장치 설정 — 템플릿 생성, 셀프체크, 가드레일로 입력과 출력의 경계를 지키는 장치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흥미롭게도 이 분류가 알려준 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보다 내가 그동안 어떤 서랍을 아예 열어보지 않았는가였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나는 4번, 결과를 스스로 검증하는 루프에는 손을 거의 대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기대했던 것과, 실제로 얻은 것
솔직히 처음엔 각 패턴의 구현 디테일을 더 깊게 파주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코드 수준에서 바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무언가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읽고 나서 남은 것은 조금 다른 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렇게 구현하라"보다 "이건 이런 이름의 문제이고, 대략 이런 선택지들이 있으며, 각 선택에는 이런 대가가 따른다"를 정리해 주는 쪽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줬다기보다, 이미 내가 어렴풋이 헤매고 있던 자리에 좌표를 몇 개 찍어준 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 점이 아쉬웠다기보다, 오히려 지금의 나에게는 더 필요했던 도움이 아니었나 싶다.
처음의 세 질문에, 지금 답해본다면
- Q1 (도메인 위에서의 촘촘한 설계) :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잘게 쪼개 부를 수 있는 이름표들은 확실히 늘어난 것 같다. 다만 특정 도메인 안으로 깊게 들어가는 몫은 여전히 내 숙제로 남았다고 느꼈다.
- Q2 (수치와 트레이드오프의 시야) : 이 부분은 기대보다 얻은 게 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6번 제약 조건 범주를 읽으며, 성능을 '좋다/나쁘다'가 아니라 비용·지연과 맞바꾸는 저울로 보는 감각이 조금 자리 잡은 것 같다.
- Q3 (팀의 공용어로 옮기기) : 가능성은 보였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회의에서 "이건 가드레일 쪽 문제 같다", "리플렉션 루프를 하나 두는 게 어떨까" 같은 식으로, 같은 이름을 두고 이야기할 여지가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이런 분께는 맞을 수도, 이런 분께는 조금 덜 맞을 수도
-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AI로 이미 무언가를 만들고 있지만, 자기 작업을 부를 언어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분. 흩어진 경험에 서랍을 만들어 정리하고 싶은 분.
- 조금 덜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 특정 프레임워크의 코드 레벨 튜토리얼을 바로 원하는 분이라면, 기대와는 결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AI로 무언가를 만들어 본 경험 자체가 적다면, 패턴이라는 지도가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정직하게 남겨두는 한계
- 이 글은 어디까지나 지금 시점의 내 이해라서, 각 패턴을 실제 프로덕션에서 오래 굴려본 경험까지 담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 32개 패턴을 모두 균등하게 소화하지는 못한 것 같다. 내 관심이 쏠린 몇 개의 서랍을 더 오래 들여다봤다는 편향이 있을 수 있다.
- 기술의 흐름이 빠른 분야라, 여기 적힌 감상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무리
읽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결국 시야라는 게 내가 몇 개의 서랍을 가졌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어떤 문제인지 부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게 회의에서 하나의 의견이 되는 것 같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건 정답이라기보다 그 '부를 수 있는 능력' 쪽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거면,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히 값을 했다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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