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의 제목에, 순간적으로 마음이갔다.
TL;DR
- 일을 마치면 책을 읽을 힘이 남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평소의 내 모습과 닮았다고 느꼈다.
- 내게 가장 중요했던 내용은 들어가며와 서장에 있었다. 독서뿐 아니라 내가 개발과 공부를 좋아하는 이유까지 되묻게 했다.
- 작가의 주장에 모두 공감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마무리를 남길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었다.
- 시원한 해결책을 얻지는 못했다. 그래도 읽는 순간만큼은 쉬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더위를 피해 들어간 서점에서 만난 책
잠시 일이 있어 밖에 나갔다가, 더위를 못 이겨 서점에 들른 날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미야케 가호가 쓰고 서영찬이 옮긴 동아시아 출판사의 『책 읽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를 알게 되었다. 제목을 보자마자 이끌림과 공감을 느꼈지만, 처음에는 내가 실물 책을 잘 읽을까 싶어 구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제목이 계속 마음에 남았다. 결국 책을 구입해서 읽게 되었고, 첫 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는지 알 것 같았다.
내게는 1장보다 앞에 있는 이야기가 중요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과 주제는 들어가며와 서장에 모여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일하면서 책을 읽는 일이 왜 어려운지, 그렇다면 어떻게 읽을 수 있을지를 도입부에서 가볍게 풀어놓는다. 책을 읽기 시작한 내 이유와 맞닿아 있어서, 자연스럽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시작은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주인공 무기의 이야기다. 작가는 종장까지 무기의 이야기를 거듭 꺼내며, 시대가 달라도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다는 쪽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중 다음 대목이 유독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내 친구들이 "가슴에 와닿았다"라고 말한 지점은 무기와 키누의 연인 관계 그 자체보다 오히려 독서에 대한 무기의 태도였다. "일을 하기 시작한 무기가 책을 못 읽게 되고, 허무한 표정으로 <퍼즐앤드래곤>(2012년에 출시하여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모바일 게임)을 하는 장면, 딱 '나구나!' 하고 생각했어." 친구들은 몇 번씩이나 그렇게 말했다. 일을 하기 시작하면 책을 못 읽게 된다는 말은 아무래도 영화 속 세계에만 국한되지 않는 듯하다.
- 27페이지 내용 중 -
작가의 친구들이 느꼈다는 감상은 내가 평소에 느끼던 것과 비슷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큰일이 생겨 야근하는 날도 있지만 평범하게 하루를 마치고 18시에 퇴근하는 날도 있다. 그런데 어느 쪽이든 무언가 큰 일을 끝냈다는 느낌과 함께 무기력해지는 내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16시 정도에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퇴근하고도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할 여유가 남아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이 제목에 나를 붙잡아 둔 게 아닐까 싶다.
평범하게 퇴근한 날에도, 나는 무기력했다.
내가 좋아해서 읽었던 게 맞을까
1장에 들어가기 전, 나를 한 번 더 멈추게 한 문장이 있었다. 이번에는 퇴근 후의 피곤함보다, 내가 책을 읽고 공부해 온 이유를 건드리는 대목이었다.
학습 서적을 살 정도로 배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그만큼 복받은 사람이다. 오늘날 사회에서 격차는 동기부여 단계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가리야 다케히코, '계층화하는 일본과 교육 위기: 불평등 재생산에서 의욕 격차 사회로', 유신도코분샤, 2001).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기에 배움의 동기를 갖지 못한 사람은 "공부니 학문이니, 다 소용없어" 라며 툭 내뱉고 마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운 좋게 동기를 가질 수 있었던 '복 받은 이들'을 헐뜯기까지 한다. 한편 헐뜯는 자들을 얕잡아 보는 '의식이 높은 이들'은 스스로 배움의 동기가 부여된 부류라고 생각하고 싶은 나머지, 이런저런 학습 서적을 닥치는 대로 사들인다.
- 30페이지, 『독학대전』 재인용 -
정말 적나라하고, 또 아픈 문장이라고 느꼈다. 특히 스스로 배움의 동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책을 사들인다는 부분에서, 나도 그 마음과 멀리 있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설명하는 문장으로만 읽고 넘기기가 어려웠다.
나는 정말 개발이라는 직무에 큰 관심과 재미를 느끼며 일해 왔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일을 위해 공부한 내용과 읽은 서적들이, 어쩌면 지적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지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왜 읽는지, 나에게 묻게 되었다.
그 질문에 곧바로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아픈 만큼 좋은 문장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 온 공부와 독서를 다시 들여다볼 시간을 주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독서 이야기를 따라가며
도입부를 지나면 책은 일본의 역사를 따라 노동과 독서를 함께 살펴본다. 메이지 시대에서 출발해 2010년대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일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읽어 왔는지 따라가는 구성이다. 자기계발서의 탄생과 교양, 샐러리맨이 읽던 책, 여성들의 문화센터와 밀리언셀러를 거쳐 일이 정체성이 되는 사회와 독서를 둘러싼 고민으로 이어진다.
내게는 일본의 사람들이 어떤 책을 유행으로 받아들이며 지내왔는지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의 내가 책을 못 읽는다는 고민으로 시작했는데,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책을 대하던 모습까지 함께 보게 된 셈이다. 평소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독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역사 이야기를 다루지만 가볍게 읽히는 편이라, 짧게 끊어 읽기에도 괜찮겠다고 느꼈다.
다만 읽는 내내 편하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은 아니다. 중간중간 작가의 주장이 강하게 느껴졌고, 내게는 편향되어 보이는 문장도 있어서 중도 하차를 생각하기도 했다. 처음의 공감이 컸던 만큼, 뒤의 모든 설명에도 자연스럽게 동의하게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읽은 이유는 분명했다. 제목과 서장에서 내 마음을 붙잡았던 작가가, 마지막에는 어떤 생각을 남길지 궁금했다. 내 고민을 알아주는 듯했던 이야기가 어디에 도착하는지는 확인하고 싶었다.
반신 사회라는 답을 읽고 남은 마음
작가가 마지막에 남기는 말은 '반신 사회'다. '전신전령(全身全霊)'은 온몸과 마음을 쏟는다는 뜻으로, 내게는 지극히 일본적인 표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일에 자신을 전부 쏟는 데서 벗어나 모두가 반신으로 일할 수 있다면, 독서할 여유도 생기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로 읽혔다. 책을 읽을 시간을 개인이 혼자 만들어 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장에는 작가가 여유 없던 직장인 시절에 사용한 독서 방법도 나온다. 점심시간이나 이동시간처럼 짧게 남는 시간에 조금의 문장이라도 읽고, 그것을 스스로 독서라고 부를 수 있는 방법들이다. 다만 내게는 크게 와닿지 않았고,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마무리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옆자리 동료가 퇴근 후 내게 하소연하듯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말에 동의하거나 쓸 만한 방법을 얻어야만 끝까지 듣게 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정직하게 남겨두는 한계
- 작가의 강한 주장과 내게 편향적으로 읽힌 문장들은 분명 걸렸다. 공감하며 시작했더라도, 중간에는 거리를 두고 읽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 틈새 시간을 활용하는 독서법이 내 무기력에 대한 답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시간을 조금씩 나누어 읽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과, 실제로 읽을 여유를 느끼는 것은 내게 다른 문제였던 것 같다.
- 작가 나름의 답은 있지만, 이 책 한 권으로 시원하게 해결될 주제는 아니라고 느꼈다. 반신 사회라는 제안까지 생각하면,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풀기 힘든 부분도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께는 맞을 수도, 이런 분께는 조금 덜 맞을 수도
-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한 번에 1시간 안쪽으로 끊어 읽기 좋은 책을 찾는 분이다. 일본 사회의 평범한 직장인들이 어떤 책을 읽고, 어떤 흐름을 책의 유행으로 받아들여 왔는지 궁금한 분께도 권하고 싶다.
- 조금 덜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퇴근 후 독서를 바로 실천할 확실한 방법을 기대하는 분이다. 내게도 방법 자체보다는 고민을 나누는 느낌이 더 크게 남았고, 작가의 주장에 대한 공감 정도에 따라 읽는 감상이 달라질 것 같다.
마무리
더위를 피해 들어간 서점에서 이 제목에 마음이 갔던 건, 회사가 16시에 끝나면 좋겠다는 내 바람과 어딘가 닿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다 읽고 나서도 그 바람을 시원하게 풀어줄 답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왜 책을 읽기 어려운지, 그리고 나는 무슨 마음으로 책을 읽어 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작가가 의도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에 쉬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픈 문장도 있었고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 재미있게 읽으며 스스로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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